[DJ entertainment]



 
작성일 : 14-06-27 18:36
김시유, <배수의 고도>의 거울 타이요
 글쓴이 : DJ ENT
조회 : 1,382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4062220557278688 [823]
편집자주 : 300:1. 김시유가 주목받은 데는 300:1이라는 수식어가 컸다. 낯선 이름, 낯선 얼굴, 그리고 스물셋이라는 나이. 떨어진 지원자들이 어디 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공연계 관계자들이 대체 누군데? 하며 극장을 찾을 만하다. 3·11 동일본지진과 원전이라는 묵직한 소재와 각기 다른 10명의 입장차라는 주제를 담은 작품이라 더 그랬다. 그런데 그곳에서 김시유는 대나무 같은 꼿꼿함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버지뻘 되는 선배들에게는 결코 지지 않았고, 차분한 목소리와 안정된 발음으로 타이요의 신념을 객석에 심었다. 칠흑같이 까맣고 깊은 눈은 쓰나미가 가져온 슬픔을, 여린 몸은 마지막 남은 악다구니를 표현하기에 좋은 도구가 되어주었다. “데모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스물셋의 열혈이 차갑고도 뜨거운 타이요에 투영되어 세상의 어른을, 나라를, 미래를 비추는 거울로 제자리를 지킨 셈이다. 농담처럼 “See you soon”이라 말했지만, 곧 다시 만나게 될 거다.

1. 연극배우입니까?
Yes.
올 3월에 알런 언더스터디로 <에쿠우스>에 참여했었고, 지금은 <배수의 고도>에 출연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독립영화를, 중앙대 입학 직전에 영화 <오늘>을 찍기도 했지만 정식으로 연극 무대에 선 건 <배수의 고도>가 처음이다.

2. 부담은 없었습니까?
No.
평소 정치·사회에 대해서는 불만만 많고 큰 관심이 없었다. 세월호 사건도 이 작품이 아니었다면 그냥 남들처럼 마음 아파하는 정도에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품에 대한 부담이 있었고 공부를 시작하면서는 나를 상황에 던지려고 계속 쓰나미 영상을 봤다. 몰입은 점점 됐지만 보다 보니 7월 5일 공연 종료 이후 난 어떻게 되지 싶더라.

3. 도움을 받은 이가 있습니까?
Yes.
연습 때는 계속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선배님들이 너무 많은 걸 주고 계셔서 상황만 갖고 들어간다. 사실 선배들은 리딩부터 지금까지 내 연기에 대한 코멘트를 특별히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시파티 때 한 선배님이 그러셨다. ‘이렇게 하면 안 돼?’냐는 말을 하는 건 우리한테 맞춰달라고 하는 거 같아서 하기 싫었다고.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너한테 맞춰줄 수 있으니 하고 싶은 대로 더 놀라고. 연출님도 닦달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늘 잘하고 있다고 믿어주셨다. 주변에서 다들 나에게 <배수의 고도>가 좋은 기회일 거라고 말하는데, 좋은 기회인 것보다 더 큰 건 좋은 경험이고 좋은 추억이라는 거다.

4. 선배를 어려워하는 편입니까?
No.
사실 연극학과임에도 불구하고 선·후배의 관념이 잘 없는 편이다. 나한테 선배는 그냥 학교 일찍 들어온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근데 그게 맞는 말이지만 그 사람이 해온 시간에 대해서는 예의를 갖춰야 된다는 말을 듣고서야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선배들은 오히려 역할로 만날 때가 더 편하다. 무대 위에서는 그냥 아빠, 누나, 동네 아저씨니까. <배수의 고도> 선배님들도 초반에는 내가 너무 당당해서 집이 잘 사는 줄 알았다고 하시던데 (웃음) 지금은 집중이 안 될 때 날 보고 믿게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5. 몰입도가 높은 편입니까?
Yes.
2010년에 파격적이라는 얘기만 듣고 <에쿠우스>를 본 적이 있다. 와! 멋있다!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작품으로 입시 준비를 하게 됐다. 그런데 읽다 보니 원초적이고 꾸밈이 없는 알런에 그냥 푹 빠져버린 거다. <에쿠우스>를 하면서는 정상적으로 얘기하거나 걸어 다닌 적이 없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쟤 뭐야” 할 정도였으니까. 그 작품을 너무 좋아해서 입학해서도 연출전공으로 들어온 다섯 명을 붙잡고 계속 <에쿠우스>라는 작품 아냐며 이거 학교에서 꼭 해야 된다고 얘기하고 다녔다. 학교에서는 함부로 못 건드리는 작품이라고 하길래 내가 연출하려고 최근까지 연출수업도 들었다.

6. 배짱이 있습니까?
Yes.
타이요처럼 이상적이고 약간 무모한 면이 있는데 내가 나를 믿는 힘이 커서다. 그게 있어서 당연히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저녁 8시까지 학교에 있으라고 해서 담임, 교장선생님을 만나 예체능은 오후에 보내달라고 말할 정도였다. 다 안 된대서 “대학으로 보여주겠다” 하고 무단 조퇴를 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그렇게 살다가 한 번 망하면 추락한다고 하는데 (웃음) 어릴 때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거였다면 크면서는 다행히 조절이 되면서 점점 자신감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7. 참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까?
Yes.
부조리한 것. 우리보고 잘하라고 하면서 자기들은 하지 않는 것. 그런 걸 못 참아서 할 말은 다 하고 살았는데, 사회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요즘은 점점 타협을 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 원래 내 모습대로 하다가는 오해가 생길 것 같아 조심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원래 내 모습이랑 달라서 힘들어지고. 그나마 다행인 건 예전과 달리 지금은 상대가 안 될 사람들이랑 만나서 자동적으로 숙이게 된다는 거다. (웃음) 눈치가 좀 생겼다.

사진제공. 두산아트센터

8. 오기도 있는 편입니까?
Yes.
지난 학기말시험 때 중국에서 온 형이랑 < M. Butterfly > 마지막 장면을 발표했다. 발표하기 1주 전에 작품이 결정됐고, 같이 하게 된 형의 한국어가 서툴러서 주변에서 다 말렸다. 형한테는 그냥 중국어로 하면 더 나을 것 같다고 그러고. 그러려면 왜 그 형이 한국에 왔겠나. 중국에서 했겠지. 그래서 속으로 ‘두고 보세요’ 이랬다. (웃음) 리허설을 4번 하고 발표를 했는데, 교수님은 그 다섯 번을 다 우셨고 선배들 동기들 모두 울음바다가 됐다. 그때 내 연기를 보고 우는 사람을 처음 봤다.

9.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Yes.
고등학교 때 연기를 하겠다고 얘기했을 때도, 대학에 붙고 나서도 아버지는 반대를 많이 하셨다. 겉멋 들어서 하는 것 같다고도 하셨고, 좋은 학교 갔으니 전과해서 공무원 시험 보라고 하실 정도였는데 알고 보니 아빠가 젊었을 때 5년간 연극을 해서였다. 그러다 학교에서 하는 공연을 한번 보러 오셨는데, 생각보다 너무 감동을 받아서 그날 장문의 문자를 보내주셨다. “지금 나가도 되겠다, 해라”라고. (웃음) 그리고 놀라운 건, 연기 하겠다는 얘기를 한 적도 없는 아주 어릴 때부터, 말할 거면 똑바로 하라는 소리를 많이 하셔서 그 습관 때문인지 발음은 괜찮은 것 같다.

10. 실패한 적이 있습니까?
Yes.
반대를 무릅쓰고 각서까지 써가면서 입시전형료만 88만 원을 들여 좋은 학교에 원서를 다 썼는데 수시 1차에서 다 떨어졌었다. (웃음) 당시 세종대 실기 때 <배수의 고도> 김재엽 연출님이 심사를 하고 계셨다. 하던 연기도 끊고, 특기로 춤을 췄는데 그것도 끊고, 연기 왜 하냐고 물으시면서 말하면 또 끊었다. 김재엽 연출님이 날 떨어뜨렸지. 연출님은 아마 모르실 거다. (웃음)

11. 몸을 잘 씁니까?
Yes.
초등학교 4학년 때 <야인시대>를 좋아해서 친구들한테 “내가 김두한 하면 어떨 것 같애”라는 걸 매일 물어봤다. 액션배우가 꿈이어서 부모님 출근하시면 매트리스 깔아놓고 “오마적! 가만두지 않을 거야!” 하면서 놀았다. (웃음) 몸 쓰는 걸 좋아해서인지 춤추는 것도 좋아하는데, 녹화해준 영상을 봤더니 내가 정신을 놓고 있더라고. (웃음) OT 때는 친하지도 않은 애들 여덟 명을 모아서 비의 ‘Hip Song’을 추기도 했다.

12. 자신이 없는 분야도 있습니까?
Yes.
연기할 때는 학교에서도 그렇고 늘 내가 먼저 하겠다고 손들던 아이였는데, 토론 같은 건 너무 힘들다. 작품을 시작하면서 제작발표회, 인터뷰, 관객과의 대화 같은 걸 하는데 연기하는 것보다 더 떨린다. 나 스스로를 내보이는 게 부끄러운 것 같다. 웅변도 했는데. 그래도 누군가가 나를 주목하는 건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웃음)

13. 목표한 것을 이뤘습니까?
Yes.
<배수의 고도> 연습을 시작하면서 연습노트에 제일 먼저 쓴 게 ‘관객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였는데 반은 된 것 같다. 1막에서는 타이요가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기도 하고 어둡기도 해서 잘 안 보였는데, 공연 넷째 날인가 노자키 아저씨를 노려보다가 우연히 객석을 봤더니 울고 계시더라. 내가 하고 있는 이 역할이 극에 잘 융화되고 있구나 싶어서 너무 감사했다. 그러면 반은 된 것 같고, 나머지 반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아직은 내가 어떻게 해야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지 잘 모르지만 지금 찾은 건 그냥 매 순간 진심이어야 한다는 거다.

14. 꿈꾸는 미래가 있습니까?
Yes.
지금은 다 경험해보고 싶은데 <배수의 고도>처럼 직접적인 답을 알려주기보다는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이 좋고, 타이요 같은 소년의 느낌으로 감정의 끝까지 달리는 것도 좋다. 그중에서도 게이 역은 꼭 해보고 싶다. 학교에서도 친구들끼리 <브로크백 마운틴>처럼 작품성 있는 건 할 수 있겠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 M. Butterfly >의 길지 않은 신을 연습하면서도 그걸 느꼈다. 그동안은 여러 분야를 넓게 보지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거 하나만 봤다면 <배수의 고도>를 통해 시각이 넓어지는 게 느껴진다. 동성애 코드가 있는 작품을 하고 싶은 것도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다양하게 열린 생각을 하고 싶어서인 것 같다.

15. 마지막으로, 당신은 누구십니까?
김시유.
1992년생. 휘어질 바에는 부러지고 싶은 스물셋.

교정. 김영진